2010년 10월 10일 일요일

고구려 답사 - 06.29

 

답사 3일째, 또다시 부슬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가이드 박실장님께서 주신 멋진 우비로 또 다시 길을 나섭니다.


 

오늘 첫 번째 답사 장소는 오녀산성 입니다.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첫 번째 왕성으로 수륙교통의 요도이자 난공지역이었습니다.

고구려 유적으로는 최초로 세계문화유산(A4개 등급)에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오녀산성에 오르기 전에 박물관에 들려 고구려 문화와 축조 기술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특히 고분벽화에서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



서양의 중세시대에 볼 수 있는 박차가 고구려에는 이미 보급되어

말 위에서 활을 자유롭게 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서양보다 1,000년 가까이 앞선 것이라고 합니다. 

 

단궁은 물소뼈로 5개를 조립하여 만든 것으로 200~300미터까지 활을 날리고,

화살 소리 또한 매우 커서 동물과 적에게 위압감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칠고 사납다라는

고구려인에 대한 선입견을 날릴 만큼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오녀산성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르고 또 오르고, 흐르는 땀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마침내 오른 오녀산성의 서문, 이곳은 옹성구조로 되어 있어서

적의 진입 경로를 연장시켜 공격의 용이성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서문의 육각형 구조물은 고구려인의 매우 정교한 돌다듬는 기술과 축성기술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경영적인 관점으로 볼 때, 조직 내 모든 부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network 구조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퇴물림 양식이나 견치석등 다양한 축성 방법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고구려 첫 번째 왕성, 오녀산성의 정상에서 섰습니다.

우리는 땅과 하늘을 가득 매운 구름 속에서 잠시 선조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하늘은 우리에게 고구려인이 바라봤던 하늘과 대륙을 구름 사이로 보여주었습니다.


.

.

 

물론 기념촬영도 했답니다.


 

오녀산성을 내려오면서 맷돌, 온돌 등 고구려인들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유물들을 보았습니다.


 

또한 고구려 축성기술의 정교함을 볼 수 있는 성벽들을 보았습니다.


 

가파른 길을 내려오면서 정말 하늘이 내린 요새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 멀리서 다시 한 번 오녀산성을 바라보면서

그 모습에 감탄을 하고 우리는 길림성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6 30, 버스는 집안시(압록강 접경 지역)에 우리를 내려주었습니다.

숙소에 가기 전에 우리는 잠시 압록강을 만지고,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지역의 발전된 모습에 반해 건너편 북한의 황폐한 모습이 대조적이었습니다.

 

 

고구려 답사 - 06.28

 

중국에서 맞는 첫 날 아침,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환인으로 4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상고성자(上古城子)하고성자(下古城子)를 답사하는 날입니다.

 

비가 내리는 심양 거리를 달리는 버스 속에서 작은 문화행사가 열렸습니다.

동아시아에는 버드나무 신앙이 널리 퍼져있는데 이는 고구려에서 유화부인을 생각나게 한다며

명철 교수님 께서는 ‘버드나무, 잉태’라는 시를 낭송하셨습니다.


 

그리고 前SK그룹 법무팀장을 역임하신 윤순한 변호사님께서

 Global Business에서 만나는 법률적issue'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21세기 Global 시대는 자본, 물자, 사람의 국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사법(법의 충돌)이 발생하게 되고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된 가장 큰 issue는 다음 3가지 입니다.

 

1. 어느 나라에서 재판을 해야하는가?

2. 어느 나라 법률로 재판을 하는가?

3. 어떻게 집행(실행)하는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법’관련 이야기를

재미있는 사례와 표현으로 유쾌하면서 유익한 시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을 지나 우리는 미창구 장군묘를 찾았습니다



둘레가 150m, 높이가 8m에 이르는 거대한 고분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무덤으로

뒤에는 용산이 서있고 앞에는 비류수가 흐르는 배산임수 지역에 세워졌습니다.



누구의 무덤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의 묘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장군묘를 뒤로 하고 는 하고성자(下古城子) 향해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하고성자(下古城子)는 고구려 초기 도읍지인 홀본성과 짝을 이루는 평지성이라고 합니다.  



주몽이 바로 여기서 고구려를 건국했다고 하니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경건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대부분 성벽이 헐리고 훼손되어

일부 남아 있는 표석만으로 성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구려 후손에게 하늘은 깜짝 소나기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내리는 비도 상고성자(上古城子)로 향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상고성자(上古城子)는 고구려 초기 무덤이 대량으로 발견 된 곳으로

돌을 쌓아서 만든 적석묘 형태이고, 지금은 20여기만 남아 있습니다.


 

 

신호등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색상의 우비 패션쇼도 즉각에서 선보였습니다.


 

 

고구려 답사 - 06.27

6 27일부터 7 3일까지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

.


윤보라 조교의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역사, 경영, 대인관계 그리고 삶의 지혜까지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운 <한국 기업 경영>시간의 대미를 장식할 ‘고구려 유적 답사’

분명히 수업 시간 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6 27 오전 6 30 인천국제공항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습니다.

전날 끝난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석패를 뒤로 한 채

우리는 흥분과 기대로 가득 찬 마음으로 고구려를 향해 떠났습니다.

 

 

한국시각으로 8 30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30분을 순조롭게 날아

심양국제공항에 (현지시각 9 00 ) 우리를 내려줬습니다.

간단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우리는 고구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요녕성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박물관으로 이동하는 동안 윤명철 교수님께서는 동북공정의 출현 배경과

그에 대한 영향력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에는 중국과 한반도의 구석기부터 중세까지

다양한 시대, 다양한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고조선, 구석기 시대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구석기 시대관>

박물관 관람의 첫 번째 코스로 삼았습니다.



 박물관 관람에 앞서 윤명철 교수님께서는

중국 및 한반도 구석기 시대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고

구석기와 신석기는 연결되는 것인가, 단절 및 새로운 주인공의 등장인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 시대에 대해서 역사의 정립 &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요녕성 박물관에서는 미사리, 전곡 등지에서 발견되는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 세형동검, 비파형 동검 등 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석기 시대 유물을 본 후,  우리는 중국문명의 탄생 배경으로 쓰이는 홍산문화의 유물을 관찰했습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후에 이번에는 동굴탐험을 떠났습니다.


 

입구만 봐도 ‘대륙의 크기’가 느껴지는 거대한 동굴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서, 본격적인 동굴탐험을 시작했습니다.



밖은 정말 후텁지근했지만, 동굴 속은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20분간 보트를 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다양한 종유석을 봤습니다.



<한국의 인디애나 존스>라는 별명을 가진 윤명철 교수님께서는

동굴탐험에도 일가견을 갖고 계셔서 종유석의 생성원리와 그 종류뿐만 아니라

막연히 알고 있던 동굴 속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잠시 우리는 공원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

중남미 여행 전문가이자 방송 기획/작가로 활동하고 계신 미키정 선생님께서

본인의 소개와 함께 재미있는 중남미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야 문명은 스페인 군대가 도착할 당시,

석기 시대로 발견되었으며 바퀴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세계 문명의 시발점으로 평가 받을 만큼 엄청난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몽고반점, 색동옷, 업어 키우는 육아 문화 등 우리와 유사점이 많습니다

 

2012 12 31에 종말이 올 것인지 궁금증을 가진 채 첫 날 일정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