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6일 월요일

[trip]혼자 떠나는 제주 여행 - 2일

2005년 여름 전역전 휴가로 다녀온 제주도 여행기입니다.
홈페이지와 쁘리띠의 여행 플래닛에 올렸는데 소중한 추억이라 옮겨놓습니다.
귀차니즘으로 사진은 몰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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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목), 새벽 4시 55분..

알람이 울리기전 잠에서 깨어났다. 세수하고 나오니 아직 해는 뜨지 않은듯 멀리서 여명만이 밝아온다.

성내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서 길을 나선다. 첫번째 목적지는 용두암이다.

제주도는 왠만한 길치라도 표지판만 잘 보면 절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관광지 표시가 잘 되어있다.

갈색 관광지 표지판에 써있다. 용두암은.. 이쪽으로.. 아침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자전거가 아직은 재미있다.

한 중학교 운동장에 한켠에 서 있는 야자수가 내가 제주도에 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순간 순간 지나치는 모든게 신기하고 재미있으니 이것이 여행의 즐거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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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암 근처에 가기전부터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다시 나기 시작한다.

선녀다리를 지나서 저멀리 용두암이 보인다.

자연과 인간의 상상력이 함께 만들어낸 작품 용두암은 내눈엔 그냥 그랬다.

상상력이 부족한걸까.. 감정이 매마른걸까.. 너무 많은 기대를 한걸까..

그냥 첫번째 관람지로 의미를 부여하고서 다시 패달에 힘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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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지해수욕장까지 가는 해안도로에서 보이는 제주의 바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제주 바다였다.





제주 바다의 푸름은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해의 그것과는 달랐다.

나에게 제주의 바다 의 푸르름은 이국적이라는 느낌보다 참 색이 곱고 정겹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늘에서는 햇볓이 쨍쨍인데, 저멀리 수평선에는 구름처럼 물안개가 끼어서 사진 찍기에는 조금 서운한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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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떠나는 여행에서 가장 아쉬울 때는 자신의 사진을 찍을때다.

누군가에게 항상 사진을 부탁할 수 도 없는 노릇.. 나에겐 튼튼한, 너무 튼튼한 삼각대가 있기에 중간 중간 멈춰서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서 셀프 타이머로 찍곤 했다. 그러나.. 누군가 내앞을 지나기라도 하면 참 민망했다. ^^;;





이사진을 찍는 순간, 두명의 자전거를 탄 남자 두명이 지나갔다.

아까 용두암에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렸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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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지 5시간이 지나 곽지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하얀 모래사장에 깨끗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정말 좋다."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그 두남자가 바다속에 한번 들어갔다 온듯 흠뻑 젖은채 코펠을 들고서 해변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때 한 아주머니께서 모래사장에 빠진 승합차 좀 빼달라셨는데 엉거주춤 있다가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 아주머니께서는 우리가 일행인줄 아셨단다.)

바퀴 주변 모래도 파보고 바퀴 밑에 합판도 덧 대어 봤지만 뒤쪽 좌측 바퀴만 하염없이 모랫속으로 빠져갔다.

결국 구난차를 부르기로 하고 두 남자는 식사준비를 하러 돌아가고 난 무얼 먹을까 고민에 빠졌다.

그때 감사의 뜻으로 점심식사를 대접하시겠다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그 남자들은 밥을 짓겠다며 한사코 거절했고

나는 이 안타까운(?) 순간을 뜬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아줌마 힘내세요!!!

결국 아주머니께서는 그냥 돌아가셨고 난 주저 앉고 싶었다.. ㅜㅜ

그때! 일행중 한명이 나에게 다가와서 "식사.. 같이 하실래요?" 묻는게 아닌가.. 조금 뻘쭘했지만.. 오~ 감사~ ^^

그래도 반찬이나 음료수좀 사오겠다니까 반찬은 이미 6가지나 준비되어있고

때마침 아주머니께서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사주셔서 그냥 공짜로 얻어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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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명의 부산사나이와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의형제 사이라는 지혁이와 민구형님은 쌀, 반찬, 버너& 코펠 그리고 텐트까지 준비해왔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서 식사정리를 하고서 준비한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담고서 다시 떠날 채비를 갖춘다.

감사의 표시로 즉석사진 한장씩 찍어드리고 수목원 엽서에 감사인사를 써서 드렸다.

그리고 오늘 하루 우리는 길동무가 되기로 했다. 혼자하는 여행의 즐거움중 한가지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아닐까..

다음 목적지는 협재 해수욕장을 향하여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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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지해수욕장에서 두시간 남짓 달리니 멀리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 해수욕장이다.





어제부터 제주에서 가장 볼만 하다고 강추를 받던 협재 해수욕장인데..

모래사장과 바다위에 미역들이 둥실 둥실 떠다니는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물론 좋은 해수욕장의 기준이 단지 수면위의 부유물 존재 여부는 아니겠지만 난 곽지 해수욕장이 더 좋은 듯 했다.  ㅡㅡ;;

그래도 제주도까지 와서 바다에 발도 안담그고 가면 후회할 듯 해서 비치샌달을 신고서 한걸음 한걸음 걸어 들어가는데..

동해보다 맑고 서해보다 깊지 않은 바다가 가족단위로 와서 시간을 보내기엔 좋을 듯 했다.

그러나 우리 부산사나이들은 입을 모아 이런데는 부산도 많다며 제주바다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그 푸름을 조용히 바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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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륙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녹차박물관(서광다원)을 향해서 갔다. 12Km정도 떨어졌다고 하는데..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 덕분에 진땀 꽤나 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간에 잠시 아이스크림 한개 먹으면서 쉬는데 수돗가에서 세수하고 가라시며 물까지 건네주셨던 아저씨의 인심은.. ^^

그러나 마냥 여기서 쉴수 없다. 가야할 길이 있기때문에 계속 계속 앞으로 가야 한다.

마침내 오후 5시가 다 되어 갈때쯤 풍력발전기로 보이는 작은 풍차들과 푸른 녹차들이 펼쳐진 서광다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위에 그림같이 잘 다듬어진 잔디위에 녹차박물관 오설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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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차밭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였지만 서광다원 역시 차밭의 푸름과 정겨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촬영하는 내내.. 생각보다 작다.. 생각보다 작다.. 하며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녹차 박물관에서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먹고 물도 얻어 마시고 2층에 있는 전망대에 가려는 순간..

수학여행온 중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결국 전망대는 포기하고 우리는 녹차박물관을 떠났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정말.. 넓었다.. 서광다원은.. 정말.. 넓었다.. ㅠㅠ

우리는 진입로방면의 차밭만을 보고서 그게 전부인줄 알았는데.. 아니였다.. 전망대에서 봤으면 정말 멋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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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아쉬움을 남겨두고 우리는 다시 패달을 밟았다. 계속되는 오르막이였지만 참 운동하기 좋은 오르막이였다.

무리하게 밟지 않아도 나름대로 속도는 유지되면서 적당한 긴장감으로 우리는 계속 달렸다.

햇볕도 누그러 드는 시간 바람도 상쾌하고 알수 없는 힘이 계속 나를 이끌었다.

산방산과 송악산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작별을 고했다. 부산사나이들은 산방산방향으로 나는 모슬포항 방향으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겠지만.. 아마 다시는 못볼지도 모르는 시간, 서로의 안녕을 빌며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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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삶 아닌가.. 또 헤어져야 만나게 되는 것이 삶일 테고..

나는 이번 여행으로 삶과 여행.. 그리고 홀로와 함께에 대해서 배우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사건 속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게 혼자서 떠난 여행의 매력 아닐까..

이번엔 누구를 만나고 어떤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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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 가까이 달려 어느덧 추사 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다는 대정에 도착했다.



사실 이곳엔 숙박시설이 한개 밖에 없다. 그것도 숙박료가 3만 9천원이란다.

이를 어찌할까.. 배는 고프고 모슬포항까지는 멀기도 하거니와 이미 하루에 너무 많이 왔기 때문에 더이상의 전진은 무리였다.

결국 근처 교회에서 하루만 재워달라 부탁을 했다. 처음 만난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친절하게도 교육관 한켠의 방을 내주셨고 선인장차까지 내주시면서 샤워와 빨래까지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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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0시.. 아이 우는 소리에 깨어서 나가보니 목사님댁 막내 아들 3살배기 찬혁이가 울고 있었다.

6살난 산들이와 2학년 하늘이는 엄마랑 아빠가 없어서 찬혁이가 운다고 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는 듯 했다.

그때 목사님 내외분께서는 교회 성도분의 장례예배로 외부에 계신 상태였다.

결국 찬혁이를 안고서 달래기 시작했고 꼬마 아가씨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나는 아기 돌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ㅡㅡ;;

팔과 다리가 연결된 원숭이와 함께 각종 플라스틱 음식을 맛나게 먹으면서 찬혁이와 산들이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자기가 어른인줄 아는 듯한 하늘이는 다리가 왜 이렇게 빨갛냐.. 어디서 왔냐.. 여자친구는 있냐.. 기타 등등의 질문을 퍼부었고..

찬혁이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더니 잠시 자는 듯 하다가.. 이내 울어버렸다..

하늘이는 공부한다며 책을 읽고 산들이는 양치질 하기 싫다고 떼를 쓰다가 지쳐 잠이 들었고  찬혁이는 오줌을 쌌다. 아이구.. ㅠㅠ

능숙한 솜씨로 기저기를 갈아주고서 자장가까지 불러 겨우 찬혁이를 재우고 산들이도 방으로 옮겨놓고서 나는 방에 들어올 수 있었다.

시간은 모르겠지만.. 침낭속에 몸을 집어 넣을 때쯤 창밖에 헤드라이트 불빛이 들어왔다.. 목사님께서 오셨다..  휴...

12시간을 넘게 달려온 길.. 참.. 피곤했다.. 내일은 비가 온다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걱정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삶, 책, 사진 그리고 마케팅에 대한 즐거운 의사소통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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