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6일 월요일

[trip]혼자 떠나는 제주 여행 - 9일

2005년 여름 전역전 휴가로 다녀온 제주도 여행기입니다.
홈페이지와 쁘리띠의 여행 플래닛에 올렸는데 소중한 추억이라 옮겨놓습니다.
귀차니즘으로 사진은 몰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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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목요일)..

제주 여행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발적 등산을 하는 날이다.

그것도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끝까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한동안 이렇게 짐 싸서 다닐 일은 없을 듯 하다.

탑동에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가기 전에 아침 식사를 하려고 편의점에 들렸다.

편의점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새벽에 있었던 축구경기 이야기를 하신다. 밤새 조금 심심하셨나 보다.

커다란 배낭에 카메라 그리고 삼각대를 보시더니 여행왔냐, 사진작가냐.. 기타등등 질문을 하신다.

그래도 삼각김밥까지 전자레인지에 덥혀 주시는 센스까지 발휘하신다. 좋은 분인 듯 하다.

한라산 등반때문에 터미널로 간다니까 편의점 앞 정류장으로 버스가 온다는 괜찮은 정보까지 주셨다.

보답으로 수목원 엽서를 몇장 드렸더니 고맙다시며 꼭 홈페이지에 오시겠단다. (아직 안오셨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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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성판악까지는 매 10분마다 버스가 있고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한라산 매표소 아저씨 덕분에 배낭은 사무실에 맡겨 놓고 삼각대와 카메라 그리고 허리가방만 갖고서 오를 수 있었다.

오늘 나는 한라산 등반 코스중 가장 길다는 성판악 코스로 올랐다가 다시 똑같은 코스로 내려와야 한다.

나머지 코스는 교통편도 불편하고 결정적으로 매표소에 가방을 맡겨 놓았기 때문이다. ㅡㅡ;;






07시 40분, 한라산 등반 시작. 정말 처음 한시간은 완만한 나무 계단으로 시원하게 뻗은 숲길이 이어진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등산객도 거의 없고 아직까지는 초반이라서 그런지 혼자서 걷는 산길로 과히 나쁘지 않은 듯 했다.

게다가 참 깨끗한 주변 환경이 더더욱 내맘에 들었다. 그러던중 버려진 생수병 하나를 발견했다.

정상까지 물을 판매하는 곳이 없기에 이 병을 들고서 사라악 약수터에서 채워 갈까 하는 마음에 병을 들었는데 뚜껑이 없다.

"에~이~" 하면서 병을 버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런데 내가 마시지 못하더라도 주워 올 걸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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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시 50분, 사라악 약수터에서 잠시 목을 축인다. 초반 2시간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기 때문에 물도 별로 마시지 않았다.

그래도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서 다시 출발한다. 이제 한시간 정도 더 올라가면 진달래 밭 대피소다.

조금씩 가파라지는 등산로.. 휴.. 역시.. 힘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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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40분, 진달래밭 휴게소에 도착.. 조금은 힘들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따뜻한 커피 한잔이 참 좋다.





아까부터 내 앞에서 산을 오르시던 아저씨께 "혼자 오셨어요?"라고 물어봤다. 많이 뻔뻔해지고 넉살도 늘었다. ^^

일행분이 너무 느려서 버려(?)두고 오셨다는 분은 5사단 보병연대 대위셨다. 음.. 괜히 말걸었다. 아무리 말년이라고 해도...

경례는 하지 말라는 감사한 명령(?)에 그냥 목례만 하고서 빠른 속도로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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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밭을 지나면 그때부터 장난이 아니다. 아침과 각이 틀리다. 한걸음 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도 오늘 끝까지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오르고 또 오른다. 어느새 구름보다 내가 위에 올라와 았다.






그냥 오르기도 힘든데 여기까지 등산로를 만든 분들의 노력과 수고가 참 감사할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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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40분, 드디어 정상이다. 비행기를 타고 있지 않은 이상 나보다 위에 있는 남한 사람은 없다. 야호~!~!





처음 보는 백록담은 날이 가물어서 물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고 기분도 좋다. 정상에선 기쁨이 생각보다 크다. 이래서 등산을 하는가 보다.









정상에 오른 기쁨도 잠시 이내 허기진 배속에서 밥 달라 거지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한시간은 족히 내려야 진달래밭에 도착할텐데..... 하지만 방법이 없다.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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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착한 대피소에서 컵라면 한그릇을 후딱 해치웠다.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이 단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대피소 근처 여기 저기에 빈 도시락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일단 내 주변에 있는 것부터 치워 놓고서 길을 나섰다.

올라갈때는 보이지 않던 작은 쓰레기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대피소에 오르기 전에 먹고 버린 도시락부터 물통, 과자봉지, 사탕껍질까지...

그냥 내려가자니 누군가가 또 치워야 하고 치우지 않으면 이곳이 더러워 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아침에 버려둔 PET병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결국 하나씩 주워가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있는 쓰레기를 줍고 있자니 내가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된듯했다.

그아이들은 과자를 주웠지만 그래도 어딘가를 향해 가면서 무언가를 줍는 것은 비슷하지 않은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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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환경에 지나친 관심을 갖고 있거나 자연보호에 앞장 서는 그런 용기있는 지성인은 아니다.

가끔씩은 쓰레기를 아무곳에나 버리기도 하고 친환경 제품의 가격이 비싸면 과감하게 기존 제품을 선택한다.

그런 내가 이렇게 쓰레기를 주워 가는 것은 때론 이렇게 착한 일을 하면 다른 누군가가 행복해 지고

다른 누군가의 행복이 언젠가 나에게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 질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하고 싶지만 부끄러워 못했다면 이렇게 밖에서라도 한번 해보는거 기분 좋은 일이다.

올라갈 때 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려 2봉지 가득 쓰레기를 담아 내려오는 길..... 산을 오르는 기쁨 못지 않았다.

다음에 한라산을 오르게 된다면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오를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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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가 되자 빗방울이 하나 둘 씩 떨어지고 있었다.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셔틀버스 운전기사 아저씨가 나를 향해서 손짓을 하면서 크랙션을 울린다.

가까이 갔더니 어디까지 가냐 시기에 터미널까지 간다니까 태워주시겠다면서 올라오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혼자서 비를 맞으며 앉아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나 보다.

손님들을 한라산에 모시고서 외국인 여행객을 모시러 공항에 가는 길이시라는 아저씨 덕분에

바로 공항으로 갈 수 있었다. 시간도 돈도 절약되는 이런 횡재를 하다니. 역시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는게 사실이였다. ^^

아저씨와 함께 제주 관광 산업과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를 실컷 하다보니 어느새 공항이 였다.

이번에도 역시 감사의 표시는 엽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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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부스에서 발권하고서 저녁으로 해물우동 한그릇 해치우고 잠깐 게임방에 들려주셨다.

남은 시간은 제주 면세점에서 보내야 겠다는 생각에 먼저 티켓을 끊고서 면세점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크지도 않고 상품도 대부분 술, 담배, 화장품이라서 살만한 제품이 없었다.

다행히 전부터 사고 싶었던 지갑과 향수 하나씩 구입하고서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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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좌석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개옆 창가다. 동기녀석 여자친구에게 정말 고마웠다.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 정말 가야할 시간이다.

활주로를 미끄러지듯이 제주땅에서 둥실 올랐다. 어제 내가 돌아 다녔던 탑동의 모습이 보인다.

제주시의 야경은 제주가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였다.

50분 남짓, 비행기는 어느새 서울 하늘을 날고 있었다.

성냥갑만한 아파트와 빌딩속에서 아웅다웅 사는 사람들 그리고 한강변을 바쁘게 달리는 자동차들..

잠시후면 나도 저 아래에서 저들처럼 정신없이 살겠지.

언제 그렇게 여유로운 생각과 생활을 했냐는 듯이......

그래도 지난 9일간의 제주와 제주 사람들이 나에게 준 커다란 추억을 잊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가끔씩 삶이 힘들고 지칠때면 그 기억으로 잠시나마 내가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삶, 책, 사진 그리고 마케팅에 대한 즐거운 의사소통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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