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6일 월요일

[trip]혼자 떠나는 제주 여행 - 3일

2005년 여름 전역전 휴가로 다녀온 제주도 여행기입니다.
홈페이지와 쁘리띠의 여행 플래닛에 올렸는데 소중한 추억이라 옮겨놓습니다.
귀차니즘으로 사진은 몰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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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금요일)..

간밤에 잠을 뒤척이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고 말았다.

부대에서는 새벽에 일어나기가 참 힘들었는데 12시간을 넘게 자전거를 타고나서도 가뿐하게 일어났다.

게다가 예배시간에도 졸리지도 않는 것이.. 희한하네.. ㅡㅡ;

새로운 환경에 몸이 긴장해서인지 제주도 공기가 좋아서 인지.. 아마 둘 다일듯 싶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방으로 들어와 주섬주섬 짐을 챙기다가 잠시 누웠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보니 8시다. 창밖을 보니 땅바닥은 촉촉한데 빗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가야하나.. 오늘 비가 온다던데.. 그냥 오늘 하루 여기더 머물면 안되냐고 여쭤볼까..

여행이 힘들었던 것도 아닌데 괜시리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지 않으면

나를 만나기 위해서 예비된 또다른 누군가를 못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쯤 어떤 이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자 배낭 끈을 동여맬 수 있었다.

비록 쉽지 않고 알 수 없고 귀찮을 수도 있지만 그게 사람 사는거 아닌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점검하고 방수 스프레이를 옷과 신발에 뿌려둔다.

배낭은 방수커버를 씌우고 삼각대 헤드에는 손수건을 감싸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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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는 학교에 간듯하고 산들이와 찬혁이가 마당에서 뛰놀고 있다.

마치 나를 처음 본듯한 얼굴로 바라본다.. ㅡㅡ;;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기념으로 엽서 한셑을 드리고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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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선생께서 귀양살이를 하셨다는 추사적지에 도착하자. 빗방울이 굵어진다.




입구를 지나면 2층짜리 기념관이 있고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2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조품이란다.

'세한도'나 '일로향실' 그리고 '부작 난도'등.. 이런 쪽엔 문외한인 나에게는 좋다라는 평 이외에는 무리다.

유홍준씨는 이 기념관의 위치가 추사선생의 유배지를 막고 있어 이곳의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입장료를 받기 위함이라는 나의 생각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다.





안채와 별채 그다지 크그 외에는 별 차이가 없는 집 세칸이 전부다.

새로 단단히 엮어 올린 지붕 그리고 처마 끝자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사진을 찍고 있는데 관리인 아저씨께서 말을 건네신다. 어디서 왔냐.. 서울 어디냐.. 나도 서울 신내동에 살았다..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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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에서 모슬포 항까지는 약 5, 6Km 정도 거리다. 1시간 남짓만 달리면 도착할 수 있을듯 했지만

비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조심히 달렸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없었지만 다행히 평지라 별 문제없이 모슬포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한시간 정도 지나니 어디선가 바다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무작정 그 냄새를 따라갔다.

항구로 가는 길, 바닥에 손바닥만한 생선 한마리가 눈을 껌뻑이며 아가미를 연신 벌린다.

펄떡거릴 힘마저 잃은듯 했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방울의 비라도 마시려고 애를 쓴다.

모슬포 항 입구에서 좌측방향으로 100미터 정도 가면 가파도/마라도 행 매표소가 있다.

가파도는 오전 10시 오후 2시 이렇게 두번의 배편이 있었다.

오늘은 오후에 풍랑주의보가 예상되어 배편이 있을런지 모르겠단다.

어차피 갈곳도 없었기에 모슬포항 주변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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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삽서~!! 자리 삽서~!! 가파도 자리 삽서~!! "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파도에 가는 좌석(자리)을 파는 줄 알았는데.. 자리 돔이라는 생선이였다.

6월 제주지방에서 많이 잡히는 자리돔은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에 붉은 기운을 띠고 있는데

대충 봐도 살이 많아 보이지 않지만 물회나 구이등으로 많이 먹는다고 한다.





그곳에서 자리를 파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어부 아저씨들의 모습을 문득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저.. 어르신 사진 배우는 학생인데, 어르신들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

이말 한마디에.. 모두들 사라지셨다. ㅡㅡ;;

그래도 삼각대를 펼쳐놓고서 몇장 찍다보니.. 나를 의식하지 않고 그냥 일을 보신다.





연신 "자리 삽서~"를 외치시는 아저씨들..  간간히 오는 손님과 흥정도 하신다.





어부아저씨 중에는 나름대로 터프한 인상에 멋진 귀걸이까지 한 어부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분들 사진중에 이아저씨 사진을 가장 찍고 싶었는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몇장 찍고 있으니까

"얼래.. 이번엔 내 차례인갑네.."하시며 웃으신다.





카메라 화면에 나온 사진을 보여드리자, "이빨밖에 안보이네.. 허허.. "하시며 멋쩍어 하신다.

뭐라도 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근처 수퍼에서 캔커피 8개를 사왔다.

"아저씨, 이거.. 모델료예요." 했더니.. 고맙다시면서 벌컥 들이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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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가 다 되어서 배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젠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듯 싶다.

혼자서 마땅히 시킬 음식이 없어 오늘도 "정식"을 시켰다.

제주도에서 먹는 두번째 정식, 서울에서 보통 백반으로 불리는 메뉴와 비슷하게 몇가지 반찬과 국이 나오는데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냄비나 뚝배기에 담긴 찌개나 장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이, 콩나물, 미역등이 담긴 냉국이 나온다는 것이다.

처음엔 언젠가 따뜻한 찌개를 주시겠지 하면서 기다렸지만.. 오늘은 그냥 따뜻한 생선부터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내린 비때문에 식당앞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고 덕분에 커피도 한잔 얻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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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어느새 2시가 다 되어가고 비는 조금씩 내리는데 가파도행 배는 출발을 했다.

여객선 치곤 상당히 작은 크기였는데, 배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까 가파도에 간다시는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오늘 비가 와서 아무도 갈 사람이 없나보네.. 하면서 배위에 올랐다.

모슬포에서 멀어지면서 파도는 격해진다. 배가 파도를 넘어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이건 거의 후룸라이드 수준이다.

내 얼굴에 빗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시원한 기분이 날아든다. 맛을 보니.. 짜다.. ㅡㅡ;;

넘어질세라 기둥을 꼭 잡고서 먼 바다를 바라본다. 어제 보았던 그 바다가 아니였다.

조용하고 푸른 빛의 바다가 아니라.. 회색 하늘에 검은 바다가 살아서 춤을 추는 듯 하얀 거품을 내고 있었다.

나도 그냥 가만히 있을수 없다는 생각에 "바다야~ 안녕~ 나 왔다!" 인사를 했다.

멀리서 그녀석도 손을 흔드는 듯한 느낌에 이 어지러움이 결코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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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남짓.. 가파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배 옆에서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까 그 할머니도 처음보는 아저씨도 아줌마도 내리기 시작했다.

난 그것도 모르고 빗물과 바닷물에 흠뻑 젖어서 그렇게 혼자 배위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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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에 내려 수퍼, 민박집을 지나 섬을 가로질러 봤다. 논.. 밭.. 초등학교.. 다시 바다..

5분이면 섬의 끝에서 끝으로 갈 수 있을 만큼 작은 섬이였다.

다시 자전거를 돌려 다시 왔던 길을 올라갔다. 대문 하나 없는 조용한 섬마을 가파도는 조금 쓸쓸해 보였다.

멀리 교회가 보인다. 오늘은 저기서 재워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박집도 있었지만 왠지 저 교회에 가면 좋은 만남과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 듯 했다.

비에 흠뻑 젖어 불쌍히 보이는 청년에게 목사님께선 교회당 육아실에 잘 곳을 내어 주셨다.

커피라도 들게 사택으로 오라는 목사님 말씀에 염치도 없는 옷만 갈아입고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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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교회는 김정욱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종명, 보라가 살고 있었다.

어디서 왔냐.. 왜 혼자 다니냐.. 신앙 생활은 하냐.. 등등 기본적인 대화가 이어졌고

서울, 문화, 경제, 교육, 신앙 등등.. 목사님 내외분과의 이야기는 그칠줄 몰랐다.

내심 사모님과 아이들에게 도시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심어 주는게 아닐까라는 걱정도 들었지만 참 즐거운 시간이였다.  

마침 오늘 비가 와서 생활용수를 공급받아 감사하다는 사모님 말씀에 수도시설이 없는 곳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장마철 풍랑주의보라도 내려지면 배가 드나들때까지 반찬거리도 없이 김치 한가지로 지지고 볶고 해야 한다.

TV 수신은 SKY life로 해야하는데 섬지역이라 한 가정에서 신청하면 받아 주지도 않아 설치도 힘들뿐더러

요즘 모든 채널을 메우다 시피하는 홈쇼핑은 아무리 구입하려해도 우체국 택배외엔 배달이 안되니 그림의 떡이다.

생활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영적인 문제도 많다시며 매일 기도하신다는 목사님 내외분..

이런 섬에서 어린 자녀와 함께 하나님의 명령에 순복하고 감사하며 사역하시는 모습이

가진게 많아도 불만이 많았던 나로 하여금 반성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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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는 사모님께서 직접 해주신 콩나물 밥은 정말 맛있었다. ^^

그렇게 가파도에서의 하루는 저물었다. 내일은 비가 오지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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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알게 되었지만 가파도는 서양인이 최초로 도착한 우리나라 섬으로 하멜이 도착한 지역이란다.

삶, 책, 사진 그리고 마케팅에 대한 즐거운 의사소통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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